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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의 작은 마을. 이곳에 사는 아흔 살 김계익 어르신은 매일같이 밭일에 땀 흘리며 하루를 보냅니다. 작년 가을, 평생의 동반자였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죠.
☞강은경 씨 한옥 민박집은 아래 버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64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한 남편. 그를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고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떠날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하는 노모. 몸도 마음도 점점 기력이 빠지는 가운데, 요즘 유독 마음에 밟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지리산 자락에서 혼자 민박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큰딸 은경 씨(61세)입니다.
한때는 자주 찾아가 마당 손질도 해주고 고장난 집도 고쳐주던 엄마지만, 이제는 긴 이동조차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아직 걸을 힘이 있을 때, 먼 길을 떠나 큰딸을 만나고자 결심합니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지리산 아래 딸의 집. 어느새 4년 만의 방문입니다. 오랜만에 재회한 모녀는 장에 가고, 아궁이에 고구마도 구워 먹으며 짧지만 진한 시간을 나눕니다. 엄마는 알고 있습니다.
이 방문이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요. 그래서 모든 순간이 더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사실 은경 씨는 엄마 마음속에서 늘 ‘걱정스러운 딸’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왔던 큰딸은,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10년 만에 파경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낮에는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고, 밤에는 글을 쓰며 무려 30년을 버텨냈습니다.
무려 32번이나 신춘문예 도전을 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고, 결국 자신을 ‘인생 실패자’라고 부르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걸 내려놓고 아이슬란드로 71일간의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실패조차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곳에서 딸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고, 지리산에 터를 잡아 한옥 민박을 시작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일군 삶. 엄마는 그런 딸이 고맙고 또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은경 씨는 어느덧 6년째 지리산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며 바쁘고 활기찬 일상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작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36살 된 아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슬픔은 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웃던 얼굴 뒤엔 깊은 상처가 남았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먼 길을 감수하며 지리산에 온 것도, 그저 딸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밝게 웃으며 엄마를 맞이하는 딸. 하지만 속은 텅 빈 듯한 느낌. 엄마의 눈엔 그저 다 보여옵니다. 그러던 중, 딸이 조심스레 내뱉은 한마디. “모든 걸 정리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요.”
이 말을 들은 엄마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찌 말릴 수 있을까요. 삶에 지친 딸의 진심을, 어머니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니까요.
지리산 자락, 초여름의 녹음 아래서 마주한 모녀의 하루. 90세 어머니는 말합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렇게라도 딸 옆에 있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짧은 만남 속에 담긴 위로와 사랑. 지친 이들의 삶에, 작지만 단단한 희망이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