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문경 족살찌개

문경의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보면 바로 지금은 역으로 사용하지 않은 불정역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에 깃든 먼지를 그대로 머금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역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1955년에 처음 문을 연 불정역은, 한때 문경의 심장처럼 뛰던 공간으로 탄광 산업이 활기를 띠던 시절, 갓 캐낸 석탄을 가득 실은 열차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오갔고, 역은 기계음과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문경 불정역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광산이 문을 닫고, 기차도 더는 이곳을 찾지 않게 되면서 불정역은 조용히 잊혀져 갔습니다.

 

불정역이 모두의 기억에서 멀어질 무렵, 이곳을 다시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최상균 씨, 지금은 역의 지킴이이자, 문화기획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어릴 적, 그는 불정역의 관사에서 살았습니다. 역장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철길 옆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입니다.

 

기차가 지나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석탄가루가 날리던 플랫폼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고 합니다.

 

그는 음악을 전공했고, 미국 무대에서 성악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고향 문경으로 돌아왔고, 버려진 불정역을 다시 숨 쉬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최상균 씨는 낡은 간이역에 ‘예술’을 더했습니다. 오페라 인형극을 시작으로, 이곳은 조금씩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관객을 실은 열차는 더 이상 오가지 않지만, 그 대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색다른 감동과 따뜻한 이야기를 안고 돌아갑니다.

 

문경 족살찌개

 

 

불정역이 가장 붐볐던 시절, 역 근처는 소위 ‘광부들의 거리’였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인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고깃집과 술집을 드나들던 거리. 그 시절을 떠올리며 최상균 씨는 지금도 종종 족살찌개를 끓인다고 합니다.

 

 

돼지 앞다리 살을 듬뿍 넣고 보글보글 끓인 찌개 한 냄비엔, 유년 시절과 아버지의 그림자, 그리고 사라진 역의 활기가 함께 담깁니다.

 

그에게 이곳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시작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손수 마당을 쓸며,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그 모습은 마치 역장의 품격을 다시 떠오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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